[책마을] 최고의 와인에 담긴 '땀과 의지'

입력 2022-01-06 17:55   수정 2022-01-07 01:58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인터컨티넨탈호텔. 프랑스의 와인명칭통제위원회 총감독, 와인 그랑크뤼클라세협회 사무총장, 유명 와인 잡지 편집장,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의 셰프와 수석소믈리에 등 내로라하는 와인·외식업계 유명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와인 블라인드 테스트가 열렸다.

여기에서 최고점을 받은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인 ‘1973 샤토 몬텔레나’ 샤르도네였다. 미국 와인이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오브리옹’ ‘샤토 몽로즈’ 등 자존심 강한 부르고뉴 와인을 제치고 포도주의 본고장에서 재평가를 받은 이 사건을 사람들은 ‘파리의 심판’이라고 불렀다.

《기적의 와인》은 파리의 심판에서 우승한 ‘샤토 몬텔레나’를 빚어낸 미국의 양조업자 미엔코 그르기치의 자서전이다. 옛 유고슬라비아에 속했던 크로아티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르기치는 제2차 세계대전과 조국의 공산화 위기를 넘기고 천신만고 끝에 기회의 나라 미국으로 건너간다.

대학생으로 위장해 유고슬라비아 국경을 넘을 때 그가 손에 쥔 것은 골판지 가방에 있던 15권의 양조 교과서와 프랑스식 베레모, 구두 밑창에 숨긴 32달러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찾았다. “신은 그날도 나의 편이었다”고 감사하면서….

미국에서의 삶도 녹록하진 않았지만, 무에서 유를 일궜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수백 에이커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세계 곳곳에서 방문객이 찾아오는 유명 와이너리를 운영하게 된 것. “기적은 오직 신만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매일 배우고 또 배운 것을 기억하며,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면 인간도 기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그가 밝힌 ‘기적’의 원동력이다.

전설적인 양조가 로버트 몬다비, 앙드레 첼리스체프와의 만남과 협업, 쓰러져가던 나파밸리의 와이너리를 되살린 작업 등 책에 담긴 그르기치의 인생사는 미국 와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와인을 맛볼 수는 없지만 이름만 들어도 향에 취하는 것 같다. 빛나는 색깔, 유혹적인 향기, 잔을 부딪치는 소리, 풍부한 맛·감촉과 어우러져 전개되는 와인의 향연 속에서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불굴의 의지와 난관을 극복하는 힘을 일깨우는 희망이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오랜 세월 동안의 배움과 노력, 더 배우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포도밭에서, 셀러에서, 실험실에서 밤낮을 지새우며 일한 결과 달콤한 열매, 내 인생 최고의 수확을 거뒀다.” 그르기치가 건네는 와인 잔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진하게 담겨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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